중국이야기

왕후이 “국가·정당 관료화로 대중과 소통 실패” -한겨레/08년 12월 24일

추바이 2008. 12. 24. 23:27

왕후이 “국가·정당 관료화로 대중과 소통 실패”
왕후이 중국 칭화대 교수 인터뷰
한겨레 이세영 기자
» 왕후이(49)
“정치적 공간이었던 국가는 제도화된 통치기구로 전락했습니다. 정당정치 역시 권력 분배 메커니즘으로 변질된 지 오래지요.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 나아가 현대 정치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왕후이(49) 중국 칭화대 교수(중문학)는 지난 18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현대 정치의 위기 양상을 ‘탈정치화’라는 말로 요약했다. 국가와 정당이 고유한 정치적 기능을 잃고 제도화·관료화함으로써 대중과의 소통에 실패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새로운 아시아를 상상한다> <죽은 불 다시 살아나> 등의 저서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중국의 신좌파 지식인으로, 지난주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의 초청으로 방한했다.

왕 교수는 탈정치화가 일당제가 특징인 중국뿐 아니라 다당제 전통이 뿌리 깊은 선행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의 동력이 소진된 뒤 당과 국가의 일체화를 통해 관료주의적 탈정치화가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됐습니다. 이런 탈정치화는 중국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전지구화·시장화는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보편적 조건이고, 이 안에서 정치의 핵심인 자발성과 자율성은 심각하게 위축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21세기 사회주의’의 대안으로 주목받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정권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차베스가 기층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긴 하지만, “그의 통치 스타일은 정당정치의 위기를 표상한다는 점에서 근본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왕 교수는 “세계 각국이 경험하는 다양한 형태의 정치 위기가 (시장화·전지구화를 통해) 상호 연관돼 있기 때문에 ‘재정치화’의 가능성 역시 광범위한 지구적 연대 속에서 모색되어야 한다”며 “궁극적 목표는 대의제라는 근대정치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사회주의에 대해선 아쉬움을 표시하면서도, 중국 사회주의가 ‘화석화된 통치 이데올로기’로 전락했다는 주장에는 ‘인정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늘날 중국 정부가 펼치는 정책을 사회주의적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사회주의가 국가·사회의 운영원리가 아니라, 국가 이데올로기가 됐다는 지적은 타당하지요. 하지만 간과해선 안 될 것은 오늘날의 중국에도 여전히 사회주의의 유산이 현실을 규정하는 힘으로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는 중국 사회에 작용하는 사회주의의 유산으로 △세계 경제로부터 상대적 독립성을 유지하는 경제 시스템 △국제관계의 대외적 자주성 △제3세계와의 우호·선린 관계 △평등·자율성에 대한 인민의 강한 요구 등을 꼽았다. 이 가운데 인민들 사이에 깊게 뿌리내린 평등에 대한 감수성은 급격한 시장개혁을 통해 양산된 부패와 불평등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왕 교수는 진단했다.

왕 교수는 민족해방운동의 유산과 평등한 주권 존중 원칙에 기반한 아시아의 연대를 강조했다. 무엇보다 “경제·정치적 협력을 넘어서는 ‘아래로부터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국면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노동자와 사회운동 단체들 사이의 연대와 협력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연대는 쉽지 않습니다. 일자리라는 생존 문제가 걸려 있는 까닭에 배타적인 기득권 지키기에 매몰되기 쉽지요. 이를 넘어서기 위해 이주노동자부터 유학생까지, 민간 분야의 인적·정서적 교류를 확대하고, 유대를 강화하기 위한 여러 방법과 경로를 모색해야 합니다.”

이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