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디지털 대중/ 진중권

추바이 2009. 1. 24. 22:38

 진보신당 게시판에 올라온 진중권님의 "디지털 대중에 관한 단상" 라는 게시물 입니다.

출처 : http://newjinbo.org/board/view.php?id=discussion&page=2&no=21830

 

 

디지털 대중

 

‘대중’(mass)의 존재에 제일 먼저 주목한 사람은 아마 발터 베냐민일 것이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라는 논문에서 그는 사진과 영화가 대중을 역사상 최초로 예술적 수용의 주체, 예술적 연출의 주체, 예술적 창조의 주체로 만들어주었다고 지적한다. 사진과 영화가 가진 이 능력은 물론 그것들이 복제 매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복제는 원본보다 열등하다’는 일반적 상식을 뒤엎고, 베냐민은 원본을 능가하는 복제기술의 잠재성을 긍정한다. 원본이 유일물이라면, 복제는 대량생산(mass production)을 가능하게 해 준다. 원본이 ‘지금, 여기’의 현존성에 묶여 있다면, 복제기술은 ‘언제, 어디서라도’ 원작의 모상을 갖다 놓을 수 있다. 때문에 원작이 본질적으로 소수 엘리트들의 전유물이라면, 복제는 대다수 대중의 공유물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복제의 기술과 더불어 예술은 비로소 매스커뮤니케이션(mass communication)이 될 수 있었다.

 

‘독자와 필자의 구별이 신분적인 것에서 기능적인 것으로 변했다’는 베냐민의 말은 대중 매체가 가진 민주주의적 가능성의 긍정이라 할 수 있다. 일간 신문의 독자투고란을 보고 내린 베냐민의 이 성급한(?) 진단은 오늘날 인터넷의 등장과 더불어 현실이 되었다. 독자는 필자가 되고, 기자가 되고, 이미지의 작가가 되고, 마이크로 영화의 감독이 되더니, 이제는 아예 방송사가 되었다. 예를 들어 등단을 하지 않은 소녀가 가장 대중적인 작가로 부상한다. 평범한 시민이 인터넷 매체의 기자로 활약한다. 예술적 훈련을 받지 않은 대중이 디카와 포토샵으로 패러디나 몽타주를 제작하고, 디지털 캠코더와 소프트웨어로 소형 영화(UCC)를 찍는다. 촛불집회 때에는 아예 노트북을 들고 거리로 나와 현장중계를 하는 1인방송사를 차렸다.

 

베냐민은 ‘자신을 연출하는 소비에트의 민중’에 관해 이야기한다. 선택된 사람들만 무대에 올라가는 연극과 달리, 영화에서는 누구나 길거리를 다니다가 카메라에 찍힐 수가 있다. 특히 소련의 혁명영화에서는 종종 노동하는 대중이 현장에서 곧바로 예술적 영웅으로 부각된다. ‘오늘날의 인간은 누구나 촬영되고 싶은 욕구를 제시할 수 있다’는 베냐민의 말은 아마도 당시에 대중화된 사진술(스냅사진)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사진과 영화는 대중의 지각방식을 변화시켰다. 현대의 대중은 사물에서 아우라를 벗겨내고 싶은 욕망, 말하자면 복제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과 더불어 그 욕망은 극한에 도달한 듯하다. 오늘날 대중은 아예 카메라를 늘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닌다. 베냐민이 말한 ‘자기를 연출하는 소비에트의 민중’은 핸드폰 카메라로 셀카를 찍는 소비사회의 대중 속에서 그 자본주의적 대응물을 발견한다.

 

웹 2.0

 

반세기 후에 미디어 이론가 빌렘 플루서 역시 대중을 적극적인 주체로 바꾸어 놓는 미디어의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빌렘 플루서는 이를 새로운 미디어가 가진 ‘전자적’ 성격과 연관시킨다. 인쇄되는 텍스트가 독자에게 완성된 형태로 제시된다면, 전자 텍스트는 늘 반제품의 형태로 제시된다. 인쇄된 텍스트를 읽을 때에 대중은 그것을 완성품으로 보아 읽고 상찬하거나 혹은 비판하는 데에 그친다. 하지만 전자 텍스트는 언제라도 복제 가능하고, 발췌 가능하고, 변경 가능하며, 합성 가능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때문에 대중은 모니터 위의 텍스트를 완성품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작성할 새로운 메시지를 위한 ‘소스’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대중은 텍스트는 물론이고, 이미지와 사운드까지 인터넷에서 발견하는 모든 정보를, 자기 자신의 메시지를 작성하여 재송신 하기 위한 재료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web 2.0과 더불어 이런 경향은 더욱 더 가속화하고 있다. web 1.0의 시대만 해도, 인터넷 공간은 아직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고, 발견하여 다운로드(download)를 받는 곳에 불과했다. 하지만 web 2.0은 인터넷의 성격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이제 인터넷은 그저 필요한 정보를 다운로드를 받는 데에 그치지 않고, 무엇보다 다운로드 받은 이미지, 사운드, 텍스트를 가공하여 새로운 메시지를 작성한 후, 이를 다시 업로드(upload)하는 공간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대중은 그저 수신자로 머물지 않고, 다운로드 받은 텍스트를 발췌, 수정, 편집하여 재송신하려 한다. 다운로드 받은 사운드는 리믹스(remix)하여 새로운 음악을 만든 후, 이를 다시 웹으로 재발신하려 한다. 심지어 다양한 원천에서 유래하는 동영상을 편집하여 아예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web 2.0이 강조하는 이 쌍방향 소통이 대중의 태도를 더 적극적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상이한 가치평가가 가능하다. 가령 우리는 (발터 베냐민을 따라) 매스미디어가 대중을 수동적 수신자에서 능동적 발신자로 만들어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web 2.0의 환경은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열어준 민주주의의 새로운 차원으로 간주된다. 한편 우리는 (아도르노나 호르크하이머를 따라) 그것이 결국 대중을 UCC의 제작에 필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소비자로 전락시키는 현상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web 2.0은 문화산업의 전략, 즉 대중을 능동적 주체로 만들어준다는 미명 아래 다시 이윤의 추구라는 자본의 욕망에 재영토화하는 현상으로 여겨질 것이다. 이 글에서 현상에 대한 가치평가(evaluation)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 평가에 앞서야 할 것은 물론 현상 자체에 대한 객관적 설명, 그것에 대한 되도록 건조한 기술(description)이다.

 

대중의 출현

 

디지털 대중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최근의 사건을 예로 들기로 하자. 지난봄에 일어난 ‘촛불집회’는 현 정권에게 커다란 위기감을 안겨 주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디지털 대중의 존재가 그들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던 모양이다. 최근 정부와 여당에서 펼치는 정책은 한 마디로 디지털 대중의 재출현을 막는 데에 집중되고 있다. 검찰과 경찰은 대중의 인터넷 정치를 단속하고, 문화부는 대중의 인터넷 글쓰기를 감시하여 보고하며, 입법부는 ‘인터넷 실명제’와 ‘사이버 모욕죄’를 도입하려 하고 있다. 한 마디로 대중의 자발성을 다시 권력의 통제 하에 포섭하려는 시도다. 인터넷 단속이라는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이 프로젝트 속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디지털 대중이 가진 힘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놀란 것은 정부만이 아니다. 기존의 정당, 시민단체, 운동조직들 역시 갑자기 등장한 디지털 대중 앞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그 전에는 시위에 참여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이 거리에 나와 ‘정권 퇴진’을 외쳤을 때, 기존의 정당, 시민단체, 운동조직에서는 ‘탈정치’의 시대에 갑자기 분출된 대중의 정치성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왜냐하면 지금 거리에 나와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대중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주체였기 때문이다. 그전에 정치적 집회나 시위는 노동자나 농민과 같은 생산계급이 주축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촛불집회를 통해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생산계급’이 아니라 ‘소비대중’이었다.

 

미국산 쇠고기라는 의제는 원래 ‘생산자’--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으로 인해 몰락하는 한국의 축산 농가--를 보호하는 문제였다. 거기에 광우병이라는 요소가 개입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그것은 이제 위험한 쇠고기를 먹어야 하는 ‘소비자’의 문제가 된다. 촛불집회의 참가자들은 생산자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들은 소비자의 권력을 사용했다. 보수신문에 대한 저항 역시 철저하게 소비자 운동의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보수언론에 대한 광고 불매 운동을 전개할 때, 대중은 자신을 ‘정보소비자’로 내세웠다. 촛불집회를 조직하는 방식 역시 소비자 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대중은 인터넷, 핸드폰, 디지털 카메라, 노트북과 와이브로 등 IT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소비자로서 자신들의 미디어 권력을 행사했다.

 

투쟁에서 유희로

 

정치성을 담지한 주체가 이렇게 생산계급에서 소비대중으로 바뀐 것은 물론 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연동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른바 ‘탈근대’(postnodern)의 조건 속에서 정치는 과거 산업혁명의 패러다임을 벗어버리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의 약화 속에서 우리는 정치적인 것의 죽음이라는 포스트모던의 징후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정치적인 것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촛불집회에서 우리가 본 것은, 산업혁명의 정치성이 사라진 자리에 다시 나타나고 있는 정보혁명의 정치성이다. 발달한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 역시 이미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의 이행을 완료했다. 이 토대의 변화가 정치적 상부구조에 가시적으로 표현된 것이 바로 촛불집회였다.

 

빌렘 플루서는 정보혁명과 더불어 생존을 위한 ‘저개발의 정치’가 유희를 위한 ‘과개발의 정치’로 이행해 갈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촛불집회는 반란이자 동시에 축제였다. 거기에는 경찰버스를 파괴하는 ‘저개발의 정치’와 무용, 노래, 밴드 공연, 코스튬 플레이, 퍼포먼스를 동반한 ‘과개발의 정치’가 혼재되어 있었다. 말이 ‘과격시위’라 하지만,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과격성은 과거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나마 그런 일이 벌어지는 순간에는 늘 ‘비폭력’이라는 대중의 구호가 울려 퍼지곤 했다. 대중의 대다수는 촛불집회가 물리력을 동원한 ‘투쟁’이 아닌 평화로운 ‘유희’가 되기를 원했다. 노사모 운동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과개발의 정치가 이번 촛불집회를 통해 그 잠재력을 전면적으로 펼치면서 나타났던 것이다.

 

투쟁와 유희의 뒤섞임 역시 토대에서 벌어진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노동의 도구와 오락의 도구가 일치한다는 데에 있다. 정보화 시대의 대중은 컴퓨터를 가지고 일하고, 동시에 컴퓨터를 가지고 논다. 클릭 한 번으로 노동의 모드에서 곧바로 오락의 모드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이 디지털 시대의 특징이다. (근무 중에 인터넷 서핑을 금하는 것은 오늘날 기업의 중대한 관심사다.) 촛불집회 속에서 정치적 진지함이 문화적 유희와 뒤섞여 나타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디지털 대중은 정치적 투쟁을 기꺼이 즐거운 유희로 체험하려 한다. 그들은 유희의 가벼움 속에 또한 정치적 진지함이 담겨 있기를 원한다.

 

토탈 스크린

 

정보화 사회란, 전체 노동인구의 절반 이상이 재화의 생산, 유통, 가공이 아니라 정보의 생산, 유통, 가공에 종사하는 사회를 가리킨다. 재화와 달리 정보에는 물질성이 없다. 예를 들어 빌 게이츠가 생산하는 제품은 원칙적으로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다. 그것은 정보, 말하자면 전자의 배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산의 비(非)물질화 경향이 발생한다. 산업 프롤레타리아의 신체가 근골계통(기계, 크레인)과 맥관계통(파이프 라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정보 프롤레타리아의 그것은 물질성이 없는 전자의 배열로 이루어진 유령과 같은 신체다. 때문에 정보화 시대에는 정치적 저항 역시 물리성을 잃고 가상성을 띠게 된다. 투쟁의 정치에서 유희의 정치로의 이행은 바로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다.

 

과거에 시위는 무엇보다도 물리적 충돌, 즉 물질과 물질의 부딪힘을 의미했다. 가령 경찰은 최루탄, 진압봉, 육체적 폭력으로 진압을 했고, 거기에 시위대는 보도블록, 쇠파이프와 화염병으로 맞섰다. 하지만 촛불집회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맞붙는 양상은 이와 사뭇 달랐다. 경찰과 시위대가 대치한 곳에서는 카메라와 카메라의 전쟁이 벌어지곤 했다. 시민들은 저마다 손에 감시 카메라를 들고 경찰의 행동을 견제하려 했고, 경찰은 손에 채증 카메라를 들고 시위대가 폭력적이라는 증거를 잡으려 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신체와 신체의 충돌이 가상에서 벌어지는 사진과 사진의 충돌로 대체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이나 노약자를 때리는 장면을 찍히지 말라’고 주문했던 어떤 기동대장의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보드리야르의 말대로, 오늘날 사건은 일어나는 것만으로는 사건이 될 수 없다. 오늘날 사건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보도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중요한 사건이라도 보도가 되지 않으면 안 일어난 것과 마찬가지이고, 아무리 사소한 사건이라도 보도가 되면 사회적 중요성을 띠게 된다. 이렇게 어떤 일을 ‘사건’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카메라의 권력이다. 촛불집회에 참가한 이들은 저마다 손에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카메라가 전화와 통합된 이후, 현실은 언제 어디서라도 시각적으로 인용 가능한 것이 되었다. 핸드폰 카메라든, 디지털 카메라든, 아니면 디지털 캠코더든, 네티즌들이 휴대하고 나온 IT기기들은 촛불집회를 석 달이 넘도록 ‘사건’으로 만드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오늘날 세계는 렌즈에서 나온다.

 

혼합 현실

 

디지털 시대에 현실과 가상은 어지럽게 뒤섞인다. 촛불집회 역시 현실의 거리에서 일어난 현상만이 아니었다. 거리에 10,000명이 나와 있다면,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시민들이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그 싸움에 가상적으로 동참했다. 자주 끊기는 저해상의 영상을 밤이 새도록 지켜보는 것은 일반적인 TV의 시청 태도가 아니다. 집회에 나올 수 없는 날, 대중은 이렇게 인터넷 중계를 통해서 가상적으로 집회에 동참하려 했다. 핸드 헬드 카메라의 흔들리는 영상은 3인칭 관찰자 시점이 아니라, 1인칭 체험자 시점을 구현한다. 때문에 대중은 인터넷 중계를 통해 집회에 나가지 않는 날에도 현장감과 긴장감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오늘날 가상은 그저 가상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과 협력을 하며, 나아가 아예 현실이 된다.

 

촛불집회가 무려 3개월 동안이나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이 현실과 가상이 어우러진 혼합현실의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시민들이 광화문에서 이른바 ‘명박산성’에 가로 막혀 네티즌들에게 도움을 요청을 하자, 사이버 공간의 네티즌들은 즉각 청와대 홈페이지에 사이버 공격을 가해 다운시키는 것으로 그 요청에 응답했다. 물대포를 맞은 시민들이 물자를 요청하면, 사이버 공간의 네티즌들은 퀵 서비스를 통해 우비 등 필요한 물자를 즉각 현장으로 보내주었다. 집회에 나오지 못한 네티즌들이 거리의 시민들에게 보내준 김밥에는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여러분과 함께 있다’는 메시지가 붙어 있었다.

 

현실과 가상의 협력은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시민들이 중계하는 일인방송, 그들이 현장에 찍은 사진, 거리에서 촬영한 동영상이 웹에 올라오면, 현장에 나오지 않은 네티즌들은 모니터 앞에 앉아서 이를 편집, 가공하여 그 영향력을 증폭시키려 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web 2.0의 시대에 대중은 텍스트, 사운드, 이미지를 더 이상 완성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원재료’로 삼아 자신의 메시지를 작성한 후, 그것을 재발신했다. 이는 물론 거리에서 벌어진 일을 사회적 중요성을 갖는 ‘사건’으로 등록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중은 이렇게 현실에서 벌어진 싸움을 가상의 공간으로 옮겨놓고, 그것을 무한 복제함으로써 파급력을 확산시키려 했다. 오늘날 대중은 이렇게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이중국적을 갖고 산다.

 

역사에서 서사로

 

20세기에 시각문화를 주도하는 것은 영화였다. 고해상을 자랑하는 시네마는 영화만의 특성이 아니라, 다른 시각매체들 역시 공통으로 추구하는 목표였다. 21세기에 들어와 여기에 변화가 생기는 듯하다. 영화가 아무리 생생하다 하더라도, 영화는 본질적으로 일방적인 매체다. 영화관의 대중은 총천연색으로 제공되는 고해상의 영상에 넋을 잃고 몰입된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대중의 시각적 체험을 결정하는 것은 컴퓨터 게임이다. 디지털 대중은 이미지를 그저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컨트롤 패널을 통해 이미지와 상호작용하는 데에 익숙하다. 그들은 방송조차도 수동적으로 보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눈앞에 보는 이미지를 스스로 변경시키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

 

촛불집회의 인터넷 생중계는 전통적인 의미의 방송과는 달랐다. 모니터로 중계되는 영상을 지켜보던 대중은 채팅창을 통해 사실상 취재의 지시를 내렸다. 방금 영상에 비친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방송팀은 곧바로 그 인물에게 마이크를 들이댔다. 과격 행위를 하는 사람을 말려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방송팀은 즉각적으로 그 사람의 행동을 제지했다. 이렇게 인터넷 방송은 멀리 떨어져서 현실에 조작을 가하는 원격현전(telepresence)의 역할까지 발휘했다. 여기서 방송은 현실을 조정하는 컨트롤 패널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물론 사건의 객관적 관찰자로 남는 전통적 방송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인터넷 생중계는 그 성격이 컴퓨터 게임에 가깝다.

가상과 현실의 구별이 약화되면서, 대중의 의식 속에서 정치와 오락 사이의 장벽도 사라진다. 여기서 정치의 오락화, 이른바 ‘폴리테인먼트’ 현상이 벌어진다. 촛불집회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그것이 현실과 게임의 혼합, 다시 말해 일종의 멀티유저 리얼리티 게임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점이다. 오늘날 대중은 주어진 영상을 그저 바라보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시들이 보는 영상을 변경시키고 싶어 하고, 나아가 그 영상이 지시하는 현실 자체를 변화시키고 싶어 한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미리 정해져 있지만, 게임의 내러티브는 참여자의 행동에 따라 얼마든지 변경이 가능하다. 촛불집회의 대중이 보여준 정치성은 역사의식이 아니다. 그들은 역사를 창조하려 한 게 아니라, 서사를 창작하려 했던 것이다.

 

네트워크와 에머전스

 

촛불집회를 과거의 집회와 구별시켜주는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이 그 누구의 지도, 지휘, 명령 없이 철저히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데에 있다. 과거의 집회는 톱다운(top down) 식이어서, 집회의 순서, 연사, 구호 등이 미리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촛불집회는 미리 정해진 순서에 따라 행해지지 않았다. 촛불집회에서 중요한 것은 ‘대책회의’가 마련한 무대가 아니라, 그 무대 아래서 펼쳐졌던 다양한 형태의 거리공연이었다. 심지어 가두행진의 방향도 현장의 토론을 통해 즉석에서 결정되곤 했다. 초청받은 연사만 마이크를 잡는 게 아니라, 그 누구라도 연단에 올라와 수많은 대중 앞에서 제 주장을 펼칠 수 있었다. 구호와 플래카드 역시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라, 집회에 참여한 개별 주체들이 직접 마련해 온 것이었다.

 

촛불집회에 나름대로 헌신적으로 참여해온 어느 운동조직은, 그저 가두행진을 할 때에 마이크 차량을 동원해 행진의 방향을 잡아주려 했다는 이유에서 네티즌들의 기피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대중의 반감은 생각보다 거셌다. 다음 날 아고라 게시판에 그 정치조직과의 접촉을 피하는 매뉴얼이 올라올 정도였다. 그들은 과연 무엇을 잘못했을까? 어떻게 보면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사소한 문제였지만, 대중은 그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대중이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자신들의 집회 참여가 철저하게 자율적이라는 느낌이 훼손당하는 것이었다. 차량의 마이크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로부터 앉으라, 일어나라, 혹은 왼쪽으로 가라, 오른 쪽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는 것이 그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과거의 집회가 정당이나 시민단체와 같은 조직(organization)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면, 촛불집회는 철저하게 시간과 공간의 동일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 네트워크(network)의 산물이었다. 네트워크를 매개로 이루어진 개별 주체들의 이 자발적 행동이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전체적 효과를 낳았다. 전혀 조직되지 않은 이 집회가 그 어떤 정당이나 시민단체에서 조직한 집회보다 더 큰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를 아마도 철학이나 과학에서 말하는 ‘창발’(emergence)의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직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집회의 생산성이 소수의 창의적 역량에 달려 있다면, 네트워크를 통한 집회의 생산성은 개별 주체들의 노력이 합해져 산출되는 예상하지 못한 창발효과에서 온다.

 

대중지성

 

촛불집회를 통해 드러난 대중의 활동을 ‘대중지성’으로 설명하는 견해가 있다. 실제로 촛불집회에는 대중지성이라고 부를 만한 현상들이 있었다. 네티즌들은 인터넷 서핑을 통해 광우병에 관한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발굴하여 정부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아고라 CSI'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날카로운 수사력으로 정부의 기만적 행태를 폭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집회와 시위를 조직하는 데서 이제까지 보지 못한 새로움을 보여 주었고, 자신들이 연출한 이 집단적 창의성에 대중들 스스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런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촛불집회에서 대중지성이 작동하는 방식에는 또한 뚜렷한 한계가 있었다.


당시 인터넷 공간에 과학적 정확한 정보나 정치적으로 올바른 정보만 유통된 것이 아니다. 광우병의 위험을 과도하게 부풀리거나, 아무런 사실이나 근거 없는 고약한 괴담 또한 떠돌아다녔다. 괴담이나 과장도 몇 단계의 복사를 거치면 순수한 시뮬라크르가 되어, 어떤 이들에게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시뮬라크르의 무한 회정 속에서 괴담이나 과장을 적절히 걸러내는 지성적 기제는 작동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이 나중에 정부에서 촛불집회를 공격하는 데에 좋은 빌미가 되어 주었다. 그 한계가 web 2.0 자체에 내재된 일반적 특성인지, 아니면 오로지 한국처럼 구술문화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 있는 사회에서만 나타내는 특수한 현상인지는 아직 분명히 말하기 어렵다.


촛불집회의 대중이 보여준 새로움을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계급에서 대중으로’, ‘조직에서 네트워크로’, ‘투쟁에서 유희로’, ‘지도에서 창발로’ 등. 하지만 이 변화를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대체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은 서로 상대의 전략을 차용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공존할 것이라 보는 것이 현실 적일 것이다. 현실이 있을 때 비로소 가상도 존재하는 것이다. 정책은 거리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결정은 집회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미래의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계급과 대중의 공존, 투쟁과 유희의 혼합, 지도와 창발의 결합, 조직과 네트워크의 접속일 것이다. 촛불을 들고 나타난 디지털 대중은 정치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