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담백함에 빠져 밤새 책을 읽다
<검사 그만뒀습니다> (오원근 지음, 문학동네, 2011)
-국민참여재판 1호 검사 오원근의 버릴수록 행복한 삶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서문 정도만 훑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멈출 수 없었다.
결국 <검사 그만뒀습니다>와 함께 밤을 샜다.
이 책에서 저자 오원근은 솔직해서 아주 좋았다.
구멍가게 주인에게 선고한 벌금 100만원 예납 결정과 검사의 ‘권위’ 사이에서 고뇌 장면, 부친을 증오하는 마음에 대한 고백... 무엇보다 그는 검사 직위를 내팽겨친 걸 영웅화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자신을 어떤 의도로든 ‘포장’하려고 했다면 독자인 나와 공감대를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드는 생각. 오원근의 그 같은 솔직함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숨기고 싶을 수도 있는 과거사를 담담하게 남들에게 드러낼 수 있었던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이는 그가 수행하면서 형성되었을 ‘아집 버리기’와 무관치 않을 것 같다. 솔직한 자기 고백은 책 표지에 있는 ‘버리고 나니 행복했습니다.’라는 문구와 통한다. 금태섭 변호사는 이 책을 “특히 법조인의 길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다.”고 추천사를 썼는데 난 거기에 덧붙여 취업 문제로 고민하는 청춘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작은 한 개인의 인생사 속에 거대한 문명의 문제에 대한 통찰과 ‘혁명’적인 의지를 담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띤다.
오원근은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자 서울중앙지검 검사직을 과감하게 버렸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기관에서 ‘출세가도’를 달리던 한 개인이 승승장구하던 ‘레이스’를 접게 한 건 부자연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던 검찰 조직과 도시 생활이었다. 그가 검사게시판에 남긴 사직 이유는 간단했다.
“제 기준으로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저같이 ‘철없는’ 사람뿐만 아니라 나무 같은 식물에게도 고통인 것 같습니다.”(194쪽)
‘농사’와 ‘수행’이 오래도록 간절히 해보고 싶었던 것이라는 오원근의 자기 고백은 실은 온전한 생명에 대한 꿈을 소망한 것이다. 흙과 함께 사는 삶만이 온전한 삶이라는 믿음은 흙을 덮어가는 도시의 본질과 대립된다. 곧 그에게 도시는 제대로 된 생명을 키워내는 공간이 아닌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오원근은 ‘돈’이나 아파트 평수로 행복의 잣대를 삼으려는 도시적 삶에도 저항한다.
“요즘 아이들은 우리보다 더 넓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 집에 다녀와서는 ‘우리도 30평 넘는 집으로 이사를 가자’라고 한다. 아내와 나는 아이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조용히 무시한다. 우리는 행복의 척도는 결코 돈의 많고 적음이나 집의 크기에 있지 않다는 것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행복은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소박한 삶에 있다.”(202쪽)
결국 오원근의 흙과 함께 살려는 삶의 방향은 그가 속해 있는 거대한 자본주의 소비주의 문명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대량 생산하고 대량 소비하는 도시 중심의 소비주의 문명에 대한 오원근 식의 치열한 반성은 이렇게도 표현된다. “일회용품 사용이 일상화되다보면 사물에 대한 존중과 애착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어차피 한 번 쓰고 버릴 것이므로.”(201)
그런데 <검사 그만뒀습니다>는 이런 소비주의 문명 속에 있는 사람들을 함부로 계몽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그는 단지 담담하게 도시의 소비주의 문명 속에 살고 있는 오원근 개인이 당면하고 있는 ‘이상과 현실 속 고뇌’를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완전 귀농은 그의 꿈이다. 그러나 변호사 일을 하면서 수행하고 텃밭 가꾸는 것이 그의 현실이다.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면서 빚어지는 거대한 문명의 문제를 자기 현실 속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는 것을 읽고 있노라면, 우리 속에 깊이 들어 와 있는 도시 소비주의 문명의 폐해에 귀 기울이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조현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