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여행]타이난(臺南) - 츠칸러우, 안핑구바오, 공묘
타이난(臺南) - 대만의 경주(慶州)
2012. 7.27(금) 1일차
행선지: 타이베이臺北 → 타이난臺南
전체 일정: 중식 후 赤嵌樓, 安平古堡, 孔子廟 관광 / 석식 후 臺南 夜市 小吃 관광 후 호텔투숙
7.27일 오전 8시 대만국립사범대 정문 앞에서 버스타고 타이난으로 출발...
타이중 휴게소에 들렸다 곧장 타이난 츠칸러우로 향했습니다
츠칸러우(赤嵌楼)
츠칸러우(赤嵌楼)는 대만 역사의 단초가 담겨져 있는 곳이랄까...하여간 타이난에서 가장 유명한 고적으로 꼽힙니다.
츠칸러우는 원래 1653년 네덜란드인들이 대만을 점령한 후
타이난을 대만의 행정, 상업의 중심를 만들기 위해 세운 성루(프로방시아 Provintia)였습니다.
그러니까 츠칸러우는 본래 유럽식 건물이었는데
명나라 정성공(鄭成功) 이후 중국인들이 중국풍 건물로 바꾸어간 곳이 '츠칸러우'입니다.
아래 보이는 문이 예전 네덜란드인들이 만든 문인데
지금은 그걸 폐하고 그 위에 '문창각'이라고 문의 기운을 북도는 중국 전통 건물 양식이 자리잡았습니다.
사료에 따르면, 1661년 명나라 성공(鄭成功)은 네덜란드인들이 투항할 때까지
이곳에 지휘소를 두었으며, 이후에는 화약과 무기를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츠칸러우 앞 마당엔 정성공이 네덜란드인을 설교하는 듯한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저도 정성공 옆에서 한장 슬쩍~~>
츠칸러우에 가면 아주 다양한 비석과 돌로 만든 동물 형상이 있습니다.
일본인 관리 흉상도 있는 등 정성공 시대, 청 왕조, 일본 강점 시기를 거치면서
마치 박물관 같은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하여간 츠칸러우는 유럽식 건축풍인 ‘프로방시아’에 중국의 ‘문창각’, ‘해신묘’가 묘하게 결합하고
다양한 비석과 돌 동물 형상들이 야자수 나무와 어우러진 멋진 곳입니다.
안핑구바오(安平古堡)
츠칸러우 구경을 마치고 네덜란드인들이 만든 요새 '안핑구바오'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 즐비한 대만 샤오츠 간판이 입맛을 유혹하더군요^^
<대만에서 아주 유명한 굴전(오아젠) 간판>
먹거리 여행은 저녁 '야시장'에서 하기로 미루고 안핑구바오로 들어갑니다.
안핑구바오는 1624년 군인과 상인으로 구성된 네덜란드 사람들이
안핑(安平)에 상륙한 후 방어 요새를 짓기 시작해 1634년에 완공한 것이라고 합니다.
1661년 정성공은 네덜란드인들을 몰아 낸 후에 이곳에 거주하면서 ‘왕성(王城)’, ‘안핑성(安平城)’이라 부르다가
일본 강점기에 다시 손질한 후 광복 후에 ‘안핑구바오’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곳에 가면 당시 망루에 올라 가 중국 대륙 쪽 바다를 바라볼 수 있고,
당시 네덜란드 군인들과 명나라 정성공 군대의 전쟁 기록과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안핑구바오 올라가는 길... 서양식 망루가 인상적입니다.
안핑구바오에서 바라 본 바다...바다 저 너머가 중국 대륙 푸젠지역이라고 합니다.
안핑구바오 기념관에 그려진 그림... 해군은 명나라 정성공 군대이고 성안이 네덜란드 군입니다~
대남 공묘(타이난 쿵먀오: 臺南孔廟)
타이난에 있는 공묘는 대만 최초로 세워졌다는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곳입니다.
국학(國學) 흥기의 기치를 걸고 1665년에 세워졌다고 하는데요,
사진에서 보이듯이 대만문화의 원류답게 ‘강희제(康熙帝)’가 쓴 '만세사표萬世師表’의 친필이 걸려 있고,
장제스 등 중국 대만 지도자들의 친필 액자들이 걸려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타이난 공묘의 역사성을 발견한 것 외에도
'나무도 걸어다니는 구나'하는 이국적인 풍경도 덤으로 발견하기도 했지요^^
타이난 공묘 앞에 보존되어 있는 '용수'(榕樹)
대만에 많이 자라고 있는 '용수'는 잎에서 다시 뿌리가 내려온다.
그 뿌리로 나무가 커지는 것...
그래서 '나무가 걸어다닌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요? ^^
오래된 나무, 용수의 모습이 말해주듯 타이난(臺南)는 대만이 '역사'라는 것을 꽃피웠던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타이난을 대만의 행정, 무역 중심지로 삼으려고 했던 네덜란드인들의 프로방시아 성루(츠칸러우)...대만 최초의 공묘...
이런 것들만 떠올려도 타이난이 17세기 이후 대만의 경제, 문화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실제로 16-17세기 중국 대륙에서 대만으로 이주한 민남, 객가인 중국인들은 안핑(安平)을 통해 타이난 일대에 정착했습니다.
명나라 정성공 부대와 이후 청나라 시기 대륙에서 이민 온 사람들도 마찬가지 경로를 밟았죠.
이들이 현재 대만 인구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내성인(內省人)'들의 조상입니다.
대만은 크게 북부, 중부, 남부로 구분합니다.
북부의 중심은 '대북(타이베이)'.. 중부는 '대중(타이중)'...남부는 '대남(타이난)'입니다.
'타이베이(대북)'가 대만의 중심이 된 건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지룽(기륭)항을 통해 타이베이에 정착한 것이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장제스의 국민당은 그들과 함께 온 대륙 지식인들과 함께 대만을 통치하게 되면서
그 과정에서 대만의 갈등 씨앗이 생겼습니다.
'중국 통일'이냐 '대만 독립'이냐, 대북이냐 대남이냐?
현재 대만 정치가 국민당과 민진당(민주진보당)의 양당 구도로 형성된 것도
그런 갈등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통일을 강령으로 삼은 국민당은 대북 지역을 정치적 근거지로,
대만 독립을 외치는 민진당은 대남 지역을 정치적 근거지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륙 중국과 밀접해지는 대만의 상황에서
오랫동안 중국 대륙과 떨어져 있던 내성인들의 고향 타이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분명한 건 중국 경제의 부흥으로 타이난은 중국 대륙인을 상대로 한 관광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타이난의 한 객가 식당에서 몇 무리의 대륙 관광객들이 금문고량주를 하나씩 들고 시끌벅적하게 식사하는 장면에서 그런 변화가 느껴졌습니다.
과연 관광 사업으로 대만 옛 중심지 타이난이 부흥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