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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과 형가(荊軻), 그리고 맹강녀(孟姜女)

추바이 2012. 11. 15. 01:01

진시황과 형가(荊軻), 그리고 맹강녀(孟姜女)

 

 

진시황과 관련된 역사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형가(荊軻)와 맹강녀(孟姜女) 이야기다.

형가(荊軻 ? ~BC 227)는 전국 시대 말엽의 유명한 ‘자객’(刺客)이다. 자객으로서 형가의 명성은 진왕 정(政), 곧 진시황 암살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당시 형가의 암살 거사에는 많은 희생이 따랐다. 연(燕)나라 태자 단은 자기 나라의 심장부인 독항(督亢)의 지도를 내놓았고, 진(秦)에서 망명해 온 장수 번오기(樊於期)는 거사 성공을 기원하며 스스로 자결해 자신의 목을 바쳤다. 형가는 번오기의 목과 연나라 독항(督亢)의 지도를 가지고 진왕 정을 알현하고 죽이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 같은 형가의 암살 사건은 후대 중국인들이 자기 시대 역사를 해석하는 단서를 제공했다. 중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인 천카이거의 <형가자진왕荊軻刺秦王>(1998)과 장이머우의 <영웅>(2002) 등이 그런 사례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중국인들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과 그를 암살하려고 했던 형가 이야기를 통해 중국문화 속에 내재된 패권(覇權)의 정당성 여부와 분열과 통일이 반복되는 중국 역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천하(중국)의 혼란을 종식시키고 통일 제국을 건설하려고 했던 진시황, 수많은 인명을 경시하고 잔혹한 전쟁으로 패권을 차지하려는 진왕 정(政)을 제압하려고 혈혈단신 응징에 나선 자객 형가! 진시황을 중심으로 전쟁 종식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진시황을 암살하려고 했던 형가는 반시대적인 인물이 되며, 반대로 인명과 도의를 경시한 채로 포악하고 잔혹한 방식으로 통일을 추구하는 것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은 형가의 행동을 ‘영웅시’해 왔던 것이다. 진시황이냐, 형가냐 하는 평가는 결국 해석자가 자기 시대 지도자의 덕목과 역할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맹강녀(孟姜女) 이야기는 진시황 시대에 박차를 가해 추진했던 만리장성(이하 ‘장성長城’) 건설과 관련된 이야기다. 장성 건설에 동원되었다가 죽은 남편을 기린 여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맹강녀의 남편은 결혼한 지 사흘 만에 장성 쌓는 데에 끌려간다. 맹강녀가 남편을 찾아 나섰지만 남편은 이미 시체가 되어 장성에 파묻힌 뒤였다. 그 소식을 들은 맹강녀가 얼마나 슬프게 통곡했던지 장성은 무너지고 남편의 시신이 나왔고, 맹강녀는 남편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고 스스로 바다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맹강녀 전설의 얼개다.

이 맹강녀 이야기는 장성이 품고 있는 문화적 의미를 상기시켜준다. 백성(인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대규모 국가 사업, 그로 인해 야기되는 백성들의 고통이 맹강녀 이야기로 회자되곤 했던 것이다. ‘맹강녀 이야기’는 ‘중국 4대 사랑 이야기’(나머지는 <견우와 직녀>, <양산백과 축영대 일명 ‘양축’>, <백사전>이다.)로 꼽힐 정도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명청 시대에 이르러서는 만화(連環畵)로 민간에 유행하다가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던 20세기 5·4 시기에 이르러서는 학문적 연구 대상이 되기도 했다. 주지하듯이 만리장성은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막고자 건설된 군사 시설이다. 춘추전국 시대에 각국의 제후들은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막으려고 봉화대(烽火臺)를 건설하고 장성을 잇기 시작했다. 그 후로 역대 제왕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히 하려고 저마다 장성을 증축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진시황과 명나라 3대 황제인 영락제다.(현존하는 장성은 대부분 명나라 때 건설된 것이다) 기원전 3세기경에 시작된 사업이 15세기에까지 이르렀으니 장성 건설의 역사가 곧 중국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맹강녀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진나라 때 진시황은 백여만 명에 이르는 남자들을 동원해 장성을 축조했다고 한다. 이 숫자는 당시 진나라 인구의 1/20에 이르는 것으로서, 동원된 사람들은 어떤 기계의 도움도 없이 순전히 인력으로만 험준한 준령(峻嶺)에서 작업했다. 그러니 맹강녀 남편처럼 작업하다가 죽고 그 시신을 수습하지도 못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음이 명약관화다. 대규모 무리한 국가 사업이 가정도 파괴하는 비정한 역사와 사회상이 맹강녀 이야기에 담겨 있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