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 나의 고통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원제: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十个词汇里的中国), 문학동네, 2012>을 읽고
위화(余华)의 자전적인 기록인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원제: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十个词汇里的中国, 김태성 번역, 문학동네, 2012)에 대한 독서 일기를 공교롭게도 12월 첫날 하게 되었다. 오늘 이 날은 영화 <26년>을 본 날이기도 하고, 아버님이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하고 계신 날이기도 하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오늘 이 독서 일기를 쓰게 마음먹게 했을까? 아마도 그건 위화의 ‘인생’과 ‘문학’에 대한 통찰이 지속적으로 내게 울림을 주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위화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썼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을 때, 나는 진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 고통만큼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쉽게 소통하도록 해주는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当他人的疼痛成一为我自己的疼痛,我就会真正领悟到什么是人生,什么是写作。我心想,这个世界上可能再也没有比疼痛感更容易使人们互相沟通了,因为疼痛感的沟通之路是人们内心深处延仲出来的。)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과 분리하는 순간, 혹은 나만 잘 먹고 잘 사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인생은 활기를 잃고 글쓰기는 힘을 잃는다,는 것을 위화의 그 문장을 되새김질하면서 확연히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진정한 인생과 글쓰기는 타인의 고통과 함께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그의 통찰은 단순한 진리다. 그러나 자기만 잘났다고 우쭐대며 사는 사람들, 먹고 사는 것에 휘둘리며 소시민적 삶에 갇혀 사는 사람들은 그토록 단순한 진리를 쉽게 망각하며 산다. 그로 인해 활기 잃은 삶을 다른 방식으로 보상받으려고 한다. 고백하건대, 나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오늘 <26년>을 보면서 감동받은 것은, 그것이 설령 액션 활극이라고 할지라도, 타인의 고통을 응시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강풀 만화, 조근현 영화의 감동의 힘은 타인의 고통을 자기화하려고 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위화의 이 책,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는 이 외에도 당대 중국을 보다 실감나게 보여준다. 중국의 1950년대 대약진운동, 1960년대 문화대혁명 같은 굵직한 역사적인 사건들을 문학적으로 포착하는 솜씨에 반했다. 또한 지금 중국인들의 문화 현상을 반영하고 있는 ‘산채(山寨산채)’ · ‘홀유(忽悠)’ 현상에 대한 위화의 해설은 중국을 이해하는 데 크나큰 도움을 준다. 이런 대목에서 드는 생각! 마오쩌둥 체제에서 리유샤오치-덩샤오핑 체제-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체제에 이르기 까지 중국은 좌에서 우로 요동쳤던 역사였다. 이는 박정희 유신체제, 전두환-노태우 등의 군사독재체제에서 민주화 운동으로 요동쳤던 우리나라 역사와 거꾸로 된 거울이라 말할 수 있다. 곧 좌에서 우로 요동쳤든, 우에서 좌로 요동쳤든 간에 중국과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서로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위화처럼 우리나라 현대사를 자신의 경험으로 서술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다. 누가될 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위화 방식의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책은 소설작품이 아니다. 중국 작가 위화의 자서전이다. 그런데도 소설작품 만큼, 어느 면에서는 그 보다 더 흥미진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이를테면 작가로서 부와 명성을 쌓았음에도, 당대 중국의 풀뿌리(草根) 현실로부터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아서였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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