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이바라기 노리코
어딘가에 아름다운 마을은 없는가
하루의 일과 끝에는 한 잔의 흑맥주
괭이를 세우고 바구니를 내려놓고
남자나 여자나 커다란 조끼를 기울이는
어딘가에 아름다운 거리는 없는가
먹을 수 있는 열매를 단 가로수가
어디까지나 잇달았고 제비꽃 빛깔의 석양녘은
젊은이들의 다정한 속삭임이 충만한
어딘가에 아름다운 사람과 사람의 아름다운 힘은 없는가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친숙함과 우스꽝스러움과 노여움이
날카로운 힘이 되어 솟아오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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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작고하신 일본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 <유월>입니다.
섬동님의 카페에 들렸다가 서경식 교수가 언급한 이바라기 노리코의 <유월>에 관한 시를 보고는
갑자기 그 시가 읽고 싶어져
신현수 님의 카페에서 찾아 옮겨 온 것입니다.
나는 이 시를 깊게 읽을 만한 시안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 내가 이 시를 감히 운운하는 것은
이 시로 인해 아파트 일과 관련하여 최근 내가 경험한 일련의 사건,
이를테면 우리 입주민들이 보여준 "아름다운 힘"이 다시금 환기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울러 "아름다운 마을"을 꿈꾸는 시인의 태도가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마을..."
이런 마을은 고래로 이 세상을 살았던 사람들이었다면 누구나 꿈꿨을 마을이 아니었을까요...
'里仁'을 사랑한 공자로부터 '무릉도원'을 꿈꾼 도연명...
대동 사회를 꿈꾼 이유로 자신을 총살한 중국이라는 마을을 도리어 '중국 두부 맛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라는 말로 용서하고 애정을 표현한 취추바이...
문화가 살아있는 아름다운 마을을 꿈꾸었던 김구 선생에 이르기까지
내가 아는 사상가, 문학가, 직업혁명가들의 꿈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이 속한 마을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자기의 명리(名利)를 위해 '아름다운 마을'을 탐하는 자들을 보고
'날카로운 힘이 되어 솟아오르며' 혼내주는 사람들입니다.
이바라기 노리코가 본 유월의 어느 날 풍경을 보고
내가 본 세상의 풍경을 떠올려 보는 이 밤은,
참으로 아름다운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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