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농촌 자생력마저 되살리는 게 ‘시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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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724 19: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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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곡성 농민에 ‘인문학강좌’ 펼친 귀농시인 백무산씨
“노동에서 내면으로 관심전환” 농사지으며 시쓰는 경험 통해 주민들에 ‘현장의 중요성’ 전해
“시가 참 재미있네요. 맑고 투명하지요. 시는 말로 그리는 그림입니다.”
23일 오후 전남 곡성군 죽곡면 농민열린도서관에서 열린 인문학 강좌에서 시인 백무산(57·사진)씨는 20대 지적장애 여성이 쓴 ‘콩밭’이라는 시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이날 강좌에 참석한 10대~70대 농민·학생 30여명은 백씨의 시와 자신들이 쓴 시를 돌아가며 소리내어 읽었다. 마을 이장 한장윤(76)씨는 “워매, 연습을 해야 하는디, 시험 보는 기분이네 잉~!”하고 운을 뗀 뒤 백씨의 시 ‘위인전’을 호소력 있게 낭송해 박수를 받았다. 백씨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다 털어 놓아도 괜찮은데, 시에 대단한 뭔가 있는 것처럼 주저주저한다”며 “공허한 언어보다 현장의 구체적 표현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농민열린도서관 관장 김재형(47)씨도 이날 ‘내 속에서는 여성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라는 심경이 담긴 자작시 ‘남자의 갱년기’를 낭독했다. 부산 출신으로 2001년 생면부지의 전라도를 찾아 곡성에 정착한 그는 2004년 7월 주민들과 함께 도서관을 열어 영화감상, 인문강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75.9㎡ 규모이지만 1만여권의 책이 비치돼 있어 누구나 언제든지 찾아와 책을 읽을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여름과 겨울 두 차례 열리는 농민인문강좌엔 노동·문화·정치·시민사회계 인사들이 초청 강사로 온다. ‘애국가…나라를/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그런데 왜 나는/그런 마음이 하나도 안 생기지?’라고 쓴 초등학교 1학년생의 시를 보고 빙긋이 웃던 백씨는 “시는 시대를 자꾸 파괴하고 도발하려는 속성이 있다”고 말했다. 경북 영천 출신으로 1974년 스무살의 나이에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84년 ‘지옥선’을 발표하며 시인의 길로 들어선 그 역시 세상의 변혁에 관심을 쏟았던 ‘시인 전사’였다. <만국의 노동자여>,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 등의 시집으로 그는 ‘이산문학상’·‘만해문학상’·‘아름다운작가상’ 등을 받았다. 그는 요즘 울산시 울주군 소호면에서 농사를 짓고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살며 시를 쓰고 있다. “노동에서 한걸음 이동했습니다. 투쟁 일변도의 시에서 인간의 내면을 탐색하는 쪽으로요….” 백씨는 한 여성 귀농인이 ‘90년대 중반 <인간의 시간> 이후 시가 달라졌다는 평가가 있다’고 묻자, “요즘 문화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는 “울산 현대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상황이 좋아지자 부동산과 골프에 관심을 두고 있다”며 “부품만 조립하면서 자율성을 상실한 노동자들이 소비문화에 쏠려 정신적 불구가 되게 하는 것이 자본주의 노동”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주민들의 시를 모아 올해 안에 시집을 만들어 볼 계획이라는 김 관장의 말을 듣고, “농민들이 시를 써 보는 것은 문화 자생력을 되찾는 마을 만들기 운동의 하나로 대단히 중요하다”며 반겼다. 곡성/글·사진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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