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는 세계다>(왕후이王暉 지음, 송인재 옮김, 글항아리, 2011)
올해로 한-중 수교가 20주년을 맞는다.
막 수교했을 때 아이가 태어났다면 올해로 성년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중국에 대한 인식은 유치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중국 사회의 한국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
동북공정, 티베트 문제, 북한 문제 등 지역, 역사 문제에서 최근 서해 어업 분쟁에 이르기까지...
한중 사이에서 벌어진 현안을 대하면서 양국의 민중들은 국가, 언론에서 제공하는 '뉴스 프레임'에 갇혀 있다.
그런데 그 뉴스 프레임들이 서방의 '눈'이나 20세기적 '민족-국가' 틀에 있다는 게 문제다.
우리 자신의 현재의 '눈'이 없다.
기존 중국(또는 한국)을 보는 시각의 한계를 넘어서 온전하게 상대방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런 고민 속에서 발견한 책이 왕후이의 <아시아는 세계다>라는 책이다.
이 책은 제목만 보면 '아시아' 전반과 관련된 책인 듯 하나 실제로는 중국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중국과 그 주변 지역을 이야기하면서
'민족-국가' 역사 서술과 오리엔탈리즘으로 중국 사회를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왜곡(?)되는지에 대해 중국인 스스로가 자문자답해가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다양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비록 이들은 단편적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중국'이라는 문맥으로 통일된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 속에서 중국과 그 근대를 새롭게 인식할 만한 안목을 기를 수 있을 것 같다.
<아시아는 세계다> 서문에는 '트랜스시스템사회'라는 저자인 왕후이가 제시한 독특한 개념이 나온다.
이걸 먼저 이해하는 것이 독법의 관건이다.
아래에 간략하게나마 그 개념을 요약해 놓는다.
왕후이는 ‘트랜스시스템사회(trans-systemic society 跨體系社會)’ 개념으로 중국과 그 근대를 보아줄 것을 주문한다. 왕후이에 따르면, 트랜스시스템사회란 서로 다른 문화, 종족집단ethnic group, 지역이 교류·전파·병존하면서 서로 연관된 사회 형태와 문화 형태를 형성한 사회(9쪽)이다. 이런 의미에서 ‘트랜스시스템사회’는 ‘민족공동체’ 시각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사회 서술과도 다르고 다원사회라는 개념과도 다르다. 또한 트랜스시스템은 다원일체 개념에 비해 시스템이 ‘원(元)’이 되는 성격을 약화시키고 시스템 사이에서 일어나는 운동의 동태성을 부각시킨다.(14쪽) 이 같은 트랜스시스템적 속성은 민족국가가 주도적인 모델이 되어 기나긴 혁명과 개혁을 거친 중국에서 사회 내부의 여전히 중요한 현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트랜스시스템적 속성은 중국 티베트 문제에 함축되어 있다는 게 왕후이의 시각이다. 현재 세계의 티베트 문제를 서술하는 방법에 민족-국가를 중심적인 틀로 삼는 것과 유럽 역사 속에서 차츰차츰 형성된 오리엔탈리즘의 환영이 착종되어 있다는 것이다. 곧 티베트에 대한 해석은 중국과 아시아를 서술하는 방법에 관한 문제와 연관된 것으로서, 지식 체계의 한계에 직면한 근대 민족주의 지식도 뛰어넘고 유럽의 오리엔탈리즘의 환영도 깨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왕후이의 이 같은 트랜스시스템사회 개념은 청(淸)대의 정치 문화, 곧 유교 문화를 거론하면서 빛을 발한다. 청나라 왕조의 통일은 유교 문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긴 했지만 단일한 문화와 종교, 더 나아가 단일한 문명에서 구축된 것이 아니었다. 그와는 정반대로 다중적인 체계를 포함한 매우 탄력적인 사회를 구성했다. 청나라 시대 황권이 티베트불교와 유교사상 사이에서 균형을 이룬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왕후이는 유교사상보다는 유교전통과 티베트불교 그리고 이슬람 문화 등 ‘시스템’을 하나로 종합할 수 있는 정치 문화가 중국의 문화적 경계와 정치적 경계의 통일성을 구축했다고 본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 견해다. 곧 청나라 왕조 시기 ‘유교 사상’이 주도적인 지위를 점한 것은 그 사상적 우월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시대적 효용성에 있다고 본 것이기 때문이다. 곧 ‘유교사상’이 정치적 성격이 매우 강했고 중개 역할을 잘 수행해, 다른 시스템들을 매우 탄력적인 네트워크에서 정교하게 조직하면서 이 ‘시스템’들 자체의 독특한 특성을 결코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교 사상이 청 왕조에 주도적인 지위를 점한 것이다. 중국문화사 전반에서 유교 사상의 부침은 바로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지 않을까. 20세기 초반 전반적인 부정에서 다시 사상적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 유교 사상은 바로 이 같은 사상적 중재자(조화)로서 역할 여부에 따라 역사적 부침을 해 왔던 것이다. 최근 <영웅>이라는 영화에서 장이머우 감독이 ‘선공후사’의 논리를 펼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커커시리>라는 영화도 ‘트랜스시스템 사회’라는 관점에서도 해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중국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0) | 2012.02.08 |
---|---|
박쥐가 중국에서 행운의 상징물이 된 까닭을 아십니까? (0) | 2012.01.23 |
중국영화 <인생> 속 '피잉시(皮影戱)' (0) | 2011.11.18 |
’아판티 이야기(阿凡提的故事)‘ (0) | 2011.10.06 |
중국의 법정 공휴일에 대하여 (0) | 2011.10.04 |